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요 헤르만 (문단 편집) == 초기 경력 == [[독일 제국]] 시대인 [[1913년]] [[8월 1일]]에 [[항구도시]] [[킬(독일)|킬]]에서 태어났다. 스무 살이 되던 [[1933년]]에 [[독일 국방군]]에 [[독일 육군(나치 독일)|육군]] [[보병]]으로 입대했으나, 2년 후인 [[1935년]]에는 공군 총사령관 [[헤르만 괴링]]으로부터 직접 권유를 받고 새로 창설된 [[독일 공군(나치 독일)|루프트바페]]로 이적했다. [[1936년]]부터 [[1937년]]까지 [[콘도르 군단]]의 [[폭격기]] 조종사로 [[스페인 내전]]에 참전했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에서는 [[폴란드 침공]] 작전을 시작으로 [[영국 본토 항공전]]에서는 KG 4 예하의 제7비행중대장으로 폭격기 부대를 지휘하며 [[런던]] 동부 [[템스강]] 어귀에 있는 항만을 폭격해 분쇄하는 공을 세웠다. [[1940년]] 10월에 영본항 전투의 무공을 인정받아 기사 철십자훈장을 수여받았고, [[1941년]]부터는 [[지중해]] 전역으로 옮겨가 [[시칠리아]]에서 발진해 [[영국군]]의 전략 거점인 [[몰타]]를 폭격하는 작전에 종사했다. 같은 해 4월, 독일 공군은 [[그리스]] [[아테네]]의 피레우스 해군항에 정박해 있던 [[영국 해군]]에 대한 봉쇄 전략을 수립하고 6일 자정부터 7일 새벽에 걸쳐 [[폭격]]을 실시했다. 이 작전은 단순히 융단 폭격을 퍼부어 항구를 봉쇄하는 것을 주임무로 시도되었으나, 공명심이 앞선 하요 헤르만은 명령을 무시하고 [[Ju 88]] 폭격기에 탑재된 250 kg 폭탄 2발을 [[영국 해군]]이 새로 취역시킨 8천톤급 탄약수송선인 글랜 프레이저(SS Clan Fraser)에 투하했다. 하요 헤르만이 떨군 폭탄은 정확히 수송선의 탄약고를 때렸고, 수 천톤의 폭약을 가득 싣고 있던 이 배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함께 정박되어 있던 크고 작은 배 10여척도 가라앉아버렸다. 이 회심의 폭격은 항만 시설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혀 피레우스 항구는 기능을 거의 잃고 한동안 수리를 받아야만 했는데, 이 피해 때문에 당분간 [[북아프리카 전선]]의 [[영국군]]에게 보급선이 끊어져 버렸다. 대단한 전공을 세웠지만 이것은 분명 명령 위반이어서 하요 헤르만 대위는 항공단 사령관인 마르틴 피에비크(Martin Fiebig: 1891~1947) 대령에게 처벌받을 상황에 처했으나, 공군 수뇌부는 적함 11척 격침이라는 전공에 기뻐하며 헤르만 대위와 함께 임무를 수행한 폭격기 승무원 4명에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무마되었다. 그 후, [[독소전]]에 참전한 그는 KG 30의 제3비행단장으로 취임해 [[소련]]에 식량과 무기, 탄약, 연료 같은 전쟁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[[무르만스크]] 항구로 향하는 [[연합국]]의 수송선단을 [[노르웨이]]에서 출격해 공격하면서 수많은 함선을 수장시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